Chapter 28
1.
게헨나 학원.
키보토스에서 3대 학원이라 불리우는 장소 중 하나이자, 사고가 끊이지 않는 무법지대의 대표 격 학원.
트리니티와 앙숙 관계이며, 주로 악마를 연상케하는 외형의 학생들이 거주하고, 3대 학원 중에서도 가장 역사가 길다는 잡다한 서술이 있으나 키보토스에서 게헨나를 가장 강렬하게 요약하는 단어는 이것이다.
막장. 그야말로 개막장의 대명사가 게헨나이다.
저 명칭이야말로 어째서 나의 다음 활동영역을 트리니티나 다른 자치구가 아닌 게헨나로 선정했는가, 에 대한 대답이 가능했다.
매도 먼저 맞으라, 라는 말이 있듯이.
3대 학원 전부에서 활동을 할 예정인 나에게는 이번 기회에 게헨나에서 활동을 이어가며 빠르게 적응을 마치는 것이 낫다는 것이 나의 판단이었다.
때문에 나는 게헨나로 향했고.
그곳에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려고 했는데.
분명 그랬는데…….
“……뭐지?”
[히이로, 제가 잘못보고 있는건가요?]
“진짜 뭐지? 환각인가?”
총성. 비명. 그리고 폭발.
앞에도, 뒤에도, 옆에도, 전방향에서 울려퍼지는 무질서의 혼돈이 게헨나의 지척에 널려있다.
분명 무정부 사태는 얼마 전에 마무리되었는데 어째서 게헨나는 아직까지 무정부 사태마냥 개판이지?
심지어 선도부가 일을 안하고 있는 것도 아니야.
그냥 더 많은 개판. 훨씬 많은 개판이 벌어지고 있을 뿐이었다.
저걸, 어떻게 잠재우지?
충격적인 광경에 고민에 빠지길 잠시, 나는 게헨나의 도심에서 아주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하고 말았다.
그 광경에 깜짝 놀라서 욕마저 튀어나올 정도로.
“시발.”
[나쁜 말 하지 말아요, 히이로! 이해는 가지만, 그래도 고운 말을 쓰셔야죠. 그래서 무슨 일이에요?]
“왜, 왜 시민이 없죠? 아니, 그것보다 왜 시민까지 저 개판 5분전에 합류해서 미친짓을 하는-”
[……네?]
영웅은 시민을 지키고, 질서를 유지하는 존재다.
내가 활동을 이어가며 정의내린 바는 그러했다.
그런데.
‘시민, 없다……?’
게헨나에는 지켜야 할 ‘시민’이 없었다.
물론 있기는 했다. 다만 그 시민이라는 존재가 학생들처럼 같이 총을 빼들고 반격하며, 험한 욕을 쏟아내면서 오히려 먼저 폭탄을 내던지는 모습을 보이기 전까지는 난 그들을 시민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게헨나에는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어째서 보호받아야 할 시민이 합세해서 학생들과 전쟁을 펼치고 있는가.
“진짜 고담 시티가 여기에 있었구나…….”
[……고담 시티가 뭔데요?]
히마리의 물음에도 나는 당혹스런 표정으로 게헨나를 내려다보며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저, 정당방위겠죠?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범죄자에게 대응하고자 저런 행동들을 하는거겠죠?”
[그, 그럼요. 설마 시민들이 먼저 범죄를 저지를 리가 없지 않-]
콰아아앙─!!
“지금이다! 다 털어버려!”
“끼얏호우~!”
애써가며 눈을 돌리는 우리의 모습이 애처롭다는 듯, 말을 꺼내기 무섭게 로봇과 수인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시민(아님)이 주변 건물에 폭탄을 던졌다.
순식간에 정문이 뚫리고 내부로 진입하는 시민들의 모습과 이어진 총성이 도심 가득 울려퍼진다.
“…….”
[…….]
우리는 침묵했다.
내가 본 광경이 현실이 아니라고 굳게 믿고 싶었다.
하지만-
“…미치겠네.”
방금 폭발에 휘말렸던 건물에서 강도들을 쫓아내며 나타난 검은 털을 가진 수인이 분노를 토해내며 직업을 시민에서 강도로 전직하는 모습을 마주한 순간, 나는 내가 해야할 일들을 깨달았다.
“히마리 선배.”
[…네. 말씀하세요.]
“저 오늘 집에 안들어갑니다.”
[…….]
다른건 모르겠고, 이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서 고생하고 있을 누군가가 머릿속에 떠올랐기에.
게헨나의 혼란을 완전히 잠재울 수는 없다. 내가 무슨 짓을 하더라도 게헨나는 여전히 혼란스럽겠지. 하지만 적어도 이 이상 혼란이 늘어나는 것을 막겠다. 그 뿐인 이야기였다.
적어도 질서를 유지하려는 몇몇 사람들과 게헨나의 몇 안되는 정상인들이라도 지켜야하지 않겠나.
“내가 게헨나의 배트맨이 될게.”
[배트맨은 또 무슨…….]
오늘만큼은 내가 게헨나의 복수이자, 밤이었다.
2.
실크가 나타났다.
그것도, D.U나 밀레니엄이 아닌 ‘게헨나’에.
이 소식은 불과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아 키보토스 전역에 퍼져나갔다. 생텀타워가 재가동됨에 따라 자치구 간의 통신이 복구되며 이슈가 전파되는 속도가 더욱 빨라진 탓이었다.
이에 각 자치구의 학생·시민들은 실크가 새로 손을 뻗은 게헨나 자치구의 상황에 집중하였고,
그곳에서 촬영되어 SNS에 올라온 영상 속 실크의 모습에 다시 한번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몇시간 째야?”
“게헨나가 꼴통학원이라는건 알았는데, 저정도라고?”
실크의 등장 소식이 알려진지 5시간이 흐른 시점.
몇 분 단위로 올라오는 실크의 소식은 아직까지 끊이지 않고 있었으며, 그녀가 불량학생과 범죄자들을 쓰러뜨리는 장면은 촬영된 모든 영상 속에서 등장했다.
거미줄을 쏘고, 주먹으로 기절시키고, 주변 구조물로 적들을 묶어버리고, 더 나아가 불량학생이 탑승한 전차를 맨 손으로 박살내는 모습까지.
주포를 주먹으로 꺾어버리고 전차의 상반부를 수십차례 가격하며 큰 구멍을 뚫어버리는 실크의 강력함에 키보토스의 모두는 다시금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제대로 된 무기조차 사용하지 않고, 오직 주먹으로만 전차를 박살내는 모습은 그야말로 영웅의 위용을 느끼게하기 충분한 장면이었으니까.
물론, 의문을 품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래서 실크는 게헨나에 왜 간 거래?”
실크의 소식은 매일매일 등장하는 내용이었지만 그 장소는 대부분 D.U 아니면 밀레니엄이었다.
이번처럼 게헨나에 나타난 일은 처음이었기에 의문이 들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 이러한 의문은 게헨나의 몇 안되는 ‘시민’들 또한 마찬가지였는지 누군가는 영상을 촬영하며 실크에게 물어보기까지 했다.
그에 실크는 대답했다.
[“게헨나에 나쁜 놈들이 넘쳐난다고 해서요.”]
[“저는 키보토스에서 악당들이 설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거든요.”]
이 말의 파급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실크의 저 발언은 마치, 키보토스의 모든 자치구에 있는 나쁜 놈들을 언젠가 전부 쓸어버린다는 선언처럼 느껴졌기에.
자치구 각지에서 불법을 저지르던 범죄자나 불량학생들은 실크의 선언에 식은땀을 흘려야만 했다.
중소학원의 학생들은 기대감에 환호했고, 대규모 학원은 흥미롭다는 듯이 실크의 발언을 주목했다.
그리고 총학생회는 실크의 말에 내심 안도했다. 키보토스에 혼란이 더욱 가중된다면 힘들어지는 것은 결국 자신들이었으니까.
각기 다르게 받아들인 말이지만 말의 저의는 단순했다. 실크는 D.U와 밀레니엄에 활동 영역을 국한하지 않고 더 넓혀가리라는 것.
그렇기에 이번 게헨나에서 시작한 히어로 활동은 일종의 과정에 불과했다. 언젠가는 트리니티도, 아비도스도, 백귀야행도, 산해경마저도. 언젠가 실크 자신이 그곳에 발을 들이게 될 것임을 선언한 바였다.
[“오늘은 그저 게헨나였을 뿐입니다.”]
게헨나가 눈에 띄었기에 게헨나로 향했다.
그 이유 뿐이었다.
실크가 마지막으로 내뱉은 말은, 키보토스의 악당들에게 내일을 두렵게 만드는 경고의 선언이었다.
3.
“넌 뭔데 끼어들고 난리야!”
“가면도 맘에 안들어!”
격렬한 투지를 드러내며 달려드는 불량배.
“하? 네가 무슨 권리로 우리의 싸움을 말리는거야!”
“짜증나게 설교는! 그냥 박살내버려!”
충동적으로 짜증을 표출하며 총을 겨누는 학생들.
몇 시간이나 쉼없이 나쁜 짓거리를 일삼는 놈들을 처벌했음에도 여전히 나를 대하는 그들의 인식은 그저 ‘방해꾼’에 불과했다.
어째서 이런 반응이 나오는가.
소식이 여기까지 전파되지 않아서? 아니다.
자신들의 실력에 자신이 있어서? 그것도 아니다.
정답은…….
“……어지럽다, 진짜.”
그냥. 그냥이다.
단순히 내가 마음에 들지 않으니까. 이게 정답이다.
내가 압도적인 실력을 보이든, 저들에게 자비없이 처벌을 가하든 그딴건 상관이 없었다. 게헨나의 최강자인 히나가 있음에도 매번 사고를 치는 놈들이다. 내가 개입한다고 달라질게 없었다.
악마의 본성이란 그런 것이라는 듯, 한없이 충동적이고 격렬한 행동으로 나를 피곤하게 했다. 이 짓도 몇시간이나 계속하니 정신적으로 힘들긴 하더라.
‘히나야, 넌 대체 어떤 싸움을 하고 있던거냐.’
새삼 문득 게헨나에서 선도부장 역할을 착실하게 수행하고 있는 히나가 대단하다고 생각되네…….
“뭘 멍때리고 있는─!”
촤악-!
하늘을 잠시 올려다보니 자신들을 무시하고 있다고 생각했는지 버럭 소리를 지르며 달려드려는 아이들에게는 각자 한명씩 거미줄을 선물해주었다.
선물이 마음에 꼭 들었는지 바닥에 드러누워 기쁨의 비명을 지르는 모습을 보라.
물론 시끄러웠기에 입을 고스란히 막아주었다. 나는 주변에서 구경하던 시민에게 선도부에 연락하라는 말을 남기며 빠르게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이곳 말고도 총성이 들려온 곳은 한 두곳이 아니었기에. 그렇게 가장 가까운 곳으로 거미줄을 타며 건물을 넘나들어 도착한 순간.
“어?”
나는 의외의 인물과 마주하게 되었다.
“아니 내 재료들이!!!!!!!!!”
하늘 높이 울려퍼지는 처절한 외침.
그 아래에는 앞치마를 두른 검은 머리의 소녀가 바닥에 널부러진 야채들 앞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폭발에 휘말렸는지 주변에서 치솟은 불길과 망가진 상자 파편, 그리고 그녀의 옆에 떨어져있는 국자까지.
“저 아이는…….”
아이키요 후우카. 분명 그런 이름이었을텐데.
마치 세상이 멸망하기라도 한 것처럼 불에 타버린 야채를 주워들며 허탈한 표정을 지은 소녀 그 모습을 가만히 두고볼 수 없었기에 나는 곧바로 그녀의 곁으로 날아가 뒤에서 난리를 치는 학생들을 덮쳤다.
“으아악!”
“뭐, 뭐야. 이 녀석─!”
“뭐긴 뭐야, 너의 머리를 후려치는 주먹이지!”
내가 불량학생들에게 달려들기 무섭게 등 뒤에서 날아드는 총알.
뭔가 싶어서 고개를 돌려보니 어느새 자리에서 일어난 후우카가 이쪽으로 총구를 겨누고 있었다.
‘뭣.’
내가 당황하며 그녀를 쳐다보자, 나와 눈을 마주친 후우카가 붉은 눈동자를 무섭게 번뜩이며 소리쳤다.
“내 재료를 망친게 너희들이냐!”
아뇨, 전 아닌데요.
살려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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