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5
1.
“이제 정말로 곧인가.”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조만간 키보토스를 뒤덮은 무정부 사태가 끝나리라는 것을.
길고 길었던 한달 간의 혼란이 마무리된다. 이 말이 의미하는 바는 단 하나 뿐이었다.
프롤로그.
이 무대의 진짜 이야기가 시작되는 것.
그렇기에 나는 지금 타이밍이 제일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시작된 순간부터라면 나 또한 이전보다 더욱 바쁘게 움직여야할테니.
계획과 목표를 다시금 점검하고, 앞으로의 활동 방침과 영역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볼 시간.
빙의 초기와 비교하여 자금도 충분히 생겼고, 인맥과 영향력도 작지 않아졌다. 내가 활용할 수 있는 패가 생겨난 현 시점에서 나는 어떻게 활동을 해야하는가.
‘슬슬 영역을 넓혀야겠지.’
우선, 지금처럼 밀레니엄과 D.U에서만 활동해서는 안되리라. 생텀타워의 복구에 맞춰 각 자치구와 D.U의 치안 또한 마찬가지로 회복될테니.
내가 중앙과 밀레니엄에만 집중할 이유도 없어지니 활동 영역을 게헨나, 트리니티까지도 넓혀도 되리라.
그 사이에 위치한 중소규모 학원에서도 활동이 가능할 것이고. 이러한 활동 거점의 확장은 첫 번째 메인스토리 장소인 아비도스에도 개입할 명분이 되리라.
다만, 지금처럼 사소한 일들에 개입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문제가 있기는 하겠지만…….
‘어차피 메인스토리 시점만 아니라면 비슷하겠지.’
내가 본격적으로 바빠지는 시기는 선생이 직접적으로 활동을 시작하는 ‘메인스토리’ 시점과 중간중간에 끼어있을 ‘이벤트 스토리’ 시점일 것이다.
그렇다면 나 또한 그에 맞춰서 해당 장소를 중심으로 활동을 이어나가면 될 일이다. 웹 슈터라는 장비가 있으니 이동시간을 고려해서 시간 계획만 잘 세운다면 큰 문제는 없으리라.
이후에는 웹 슈터뿐만이 아닌 더욱 많은 장비들을 제작하여 사용할 예정이다. 그때는 현재보다 더욱 빠른 속도를 낼 수도 있을테니 상관없는 일이다.
‘자금 루트도 현재까진 순조로운 편이긴 하지만, 여전히 나중을 생각하면 부족하다고 보는게 맞겠지.’
먼 미래, 어쩌면 가까운 미래일지도 모르는 순간에 다가올 수많은 재앙과 사건들을 막기 위해서 제작할 온갖 장비들. 그것들을 제작하기 위한 금액은 아무리 많아도 부족한 법이긴 했으나…….
이 부분은 나중에 생각하도록 하자.
지금 당장은 여유롭기도 하고, 나중에 생각해도 늦지 않은 영역이었으니.
지금 가지고있는 금액을 전부 털어넣어서 캡틴 아메리카 방패와 실크 전용 히어로 슈트를 의뢰하기는 했다. 이외에도 자잘한 장비들도 맡겨놓았고.
당분간은 그것에 먼저 적응하며 활용할 방안을 생각해보자. 그리고 다른 것들도 점검해보고.
그렇게 몇시간 동안 부실 구석에서 노트에 무언가를 적고 지우고를 반복하며 머리를 굴려나갔다.
생각. 생각. 생각.
수많은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오르고 지워지길 반복하며 괜찮은 계획들이 조금씩 수립되어갔다.
실크와 나나시의 각각 활동 범위라던가.
나나시의 의뢰 활동 분야라던가.
혹은 선생과의 관계성에 대한 고민이라던가.
물론, 가끔씩 엉뚱한 생각이 떠오르기도 했으나.
그거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긴 했으니.
그렇게 끊임없이 고민을 하다 ‘삐익-’ 하며 사건 발생 알림이 울려퍼지기 직전까지 고민에 빠져있던 나는 얼굴에 가면을 쓰며 생각을 마무리했다.
‘역시, 어려운 고민이네.’
선택과 집중.
키보토스의 모든걸 떠안을 수 없다는걸 알았기에 빠지게 된 고민들. 영웅의 본질적인 고충이다.
그럼에도 나는 선택을 내려야만 했다.
내가 내린 선택을 가치있게 사용하고, 내가 원하는 목표로 다가가기 위한 포석을 쌓으면 되리라.
그거면 된다.
“모든걸 포용할 사람은 선생으로 충분하겠지.”
나는 손이 닿는 범위에서 시민들을 돕는 ‘친절한 이웃’의 역할로 충분하리라.
2.
이번 무정부 사태의 최대 피해자는 누구일까.
키보토스의 외곽, 그것도 험지에 위치해서 모든 통신과 인프라가 끊어진 채로 힘겹게 나날을 버텨야했던 소규모 학원?
사람이 많은 만큼 분탕도 많아져서 그것을 수습하느라 잠도 제대로 못잤을 대규모 학원이 수뇌부들?
혹은 갑작스럽게 일상이 무너진데다 빌런들이 미치고 날뛰어서 제대로 된 생활도 불가능했던 시민들?
그것도 아니면 뜬금없이 뻥뻥 터져나가는 사건을 수습해야만 했던 영웅 실크?
아니다. 모두 아니다.
이번 사태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은건 다름 아닌 키보토스의 중앙 정부 역할을 수행하는 장소.
총학생회. 바로 그곳이었다.
자신들을 이끌던 초인이 사라지고, 도시 전역에서 터져나가는 사태를 수습하고, 이번 사태에 대한 모든 학원의 압박을 견뎌내고, 도시를 유지하고.
하루 하루가 재앙이나 다름없는 나날.
총학생회의 소속된 이들에게 총학생회장의 실종과 생텀타워의 정지는 그야말로 재앙 그 자체였다.
어떻게 대처해야할까.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왜 우리가 이런 일들을 겪어야만 하는가.
난데없는 혼돈에 총학생회는 그야말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바람 풍선마냥 휘둘렸다.
나름 각지의 능력자들만 모여들어 완전히 무너지진 않았으나 그럼에도 이번 사태의 여파를 완전히 피해내는 것은 불가능했고, 모든 이들이 피폐해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만두고싶다. 격렬히 그만두고싶다!!!”
“어째서 일이 안끝나는거지? 아아, 일이 끝난 뒤에는 무엇이 있냐고? 그 뒤엔 일이 찾아온다. 하하하!”
“착하게 살게요. 착하게 살게요. 착하게 살게요. 착하게 살게요. 착하게 살게요. 착하게 살게요. 착하게 살게요. 착하게 살게요. 착하게 살게요.”
“끼에에에에에엑─!!”
“제발 아무나 나를 구해다오…….”
이미 제정신이 아닌 이들이 총학생회를 거닐었다.
하지만 그 모습을 바라보며 수석행정관인 ‘나나가미 린’은 확실히 상황이 나아지긴 나아졌구나, 하며 작게 미소를 머금었다.
다른 이들이 들었다면 드디어 수석행정관도 제정신이 나가버렸구나- 싶은 생각이었지만 나나가미 린은 사태가 터진 초기의 총학생회를 기억한다.
그때는 자신을 포함한 모든 이들이 저런 불평도 내뱉지 못하고 절망에 빠져있었으니.
지금에서야 저런 말이라도 내뱉을 수 있는 것이다.
‘이것도, 또 실크 그 사람 덕인가요.’
과거, 한없이 혼란스럽던 시기에 덮쳐왔던 사건.
카이저 PMC가 난데없이 혼란 진압이라는 명분으로 중앙 자치구를 말 그대로 ‘습격’했던 일을 회상한다.
그때 자신을 비롯한 수많은 총학생회 학생들은 분노를 터뜨리면서 저 무력 진압에 어떻게 대응해야할지 골머리를 썩고 있었다.
제대로 잠도 못자고, 피폐해진 정신으로 똑바로 된 판단이 서질 않았기에 그때는 정말로 기절할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나타난 존재가 있었다.
실크. 이제는 키보토스의 영웅이라 불리는 존재.
이제는 어디에서나 소식을 들을 수 있는, 어쩌면 현재 키보토스에서 가장 유명할지도 모르는 존재.
그녀는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 자신들이 해야할 치안 유지를 대신하여 수행하였고, 그 어떤 보상도 받지 않고 그저 정의만을 집행하였다.
그 날 이후, 어째서인가 도시의 혼란은 점차 줄어들었고 자신들이 수습해야 할 일들도 크게 줄었다. 이 때문에 현재도 총학생회의 많은 학생들이 실크의 활동은 은연 중에 응원하고 있었다.
린은 이 사실을 알면서도 그냥 무시하였다.
애초에 알게되었다고 막을 수 있는 일도 아니고, 실제로 자신들에게 구세주처럼 느껴지더라도 이상한 점은 없었으니까.
실크가 없었다면, 자신을 비롯한 총학생회 학생들은 학생회장이 준비해놓았던 대안인 ‘선생’이라는 존재가 오기까지 그저 피폐해진 상태로 남아있었으리라.
더 나아가, 지금보다 총학생회에서 탈퇴하는 이가 더 많아졌을지도 모르고. 예상하지 못한 문제가 더 생겨났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렇기에 린 또한 공식적으로는 총학생회장 대행이자 수석행정관인 입장이기에 자경단 활동을 하며 법 체계 위에서 날뛰는 실크를 규탄하기도 했으나, 사석에서는 그녀를 어느 정도 인정하고 있었다.
그녀의 실력과 성품 정도는 말이다.
행동 양식은 둘째치고 시민을 위하는 행동은 인정할만 했기에. 그래서 그녀도 굳이 필사적으로 실크를 잡으라고 지시를 내리지 않는 것도 있었다.
‘애초에 이젠 잡을 수 있는 인물도 아니고요.’
실크의 실력은 날이 갈수록 늘어났고, 이제는 발키리가 미리 도착하기도 전에 상황을 끝내고 홀연히 사라지는 일이 다분해졌을 정도다.
그에 매번 허탕을 치는 발키리를 바라보며 헛웃음을 흘리는 것이 린의 사소한 즐거움 중 하나였다.
“언젠가는 만날 수 있겠죠.”
실크가 활동을 꾸준히 하다보면 언젠가 총학생회와 관련되는 일이 한번쯤은 있지 않겠는가.
린은 실크에 대한 생각을 그쯤에서 마무리했다.
이제 자신이 생각해야 할 것은…….
“선생님, 인가요.”
총학생회장이 준비한 이번 사태의 대안.
그 존재를 슬슬 마주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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