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2
1.
우선, 캡틴 아메리카의 전투 방식이 성립되기 위해선 다음과 같은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첫째, 슈퍼솔져 혈청에 걸맞는 신체능력.
이 부분은 사실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총에 맞아도 끄덕없는 키보토스 사람의 내구성에다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는 나- ‘실크’의 괴물같은 신체능력이 더해진 이상 과하면 과했지, 부족하진 않으리라고 확신했다.
둘째는, 역시나 ‘방패’의 여부였다.
공식 설정상 지구에서 제일 단단한 물질인 ‘비브라늄’과 다른 금속들의 합금으로 만들어진 방패.
스파이더맨 피셜로 ‘물리법칙을 위반하는’ 수준의 사기적인 아이템인 방패가 존재해야만 내가 생각하는 ‘캡틴 아메리카 식’ 전투법을 펼칠 수 있었다.
더 나아가 셋째로, 강인한 멘탈과 격투 실력.
그의 신념은 둘째치고, 반드시 수반되어야 하는 능력이 바로 저것이었다. 캡틴의 전투방식은 방패를 투척하는 것을 제외하면 언제나 근접전이다.
그렇기에 격투는 물론이고, 심리전에도 능해야만 했다. 전쟁에서는 항상 선두에 서며, 공격을 미리 읽어내 방패로 방어하며, 정면으로 돌파하는 것이 캡틴 아메리카의 전투 방식이었다.
과연 나는, 이러한 식의 전투가 가능한 것일까.
나 자신이 고안해낸 방법이었음에도 여전히 수많은 의문이 마음 속에 남아있었다.
어쩌면 그렇기에 네루의 제안을 받아들였을지 모른다. 그녀와의 전투로 경험을 쌓는다면, 나의 선택에 확신이 생기지 않을까 해서.
그리고 그 생각은.
아주 정확하게 맞아 떨어졌다.
2.
콰아앙-!!
발을 박차는 소리가 번개처럼 울려퍼진다.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나와 네루. 우리는 순식간에 각자의 무기를 빼들며 서로를 향해 겨누었다.
한 사람은 총을, 그리고 한 사람은 방패를.
투다다다─!!
네루가 발사한 총알이 방패에 맞아 튕겨나간다.
나는 방패를 앞으로 내세우며 걸음을 멈추지않고 네루를 향해 몸을 던졌다.
“꽤 성가시게 구는구만…!”
“흐아압-!”
내 기습적인 돌진에 곧바로 몸을 뒤로 빼내는 네루였지만, 나는 그녀의 움직임을 놓치지않고 방패의 측면으로 손을 빼내어 권총을 발사했다.
탕-! 탕-!
하지만, 예상처럼 쉽게 총알을 피해내며 씨익- 미소를 머금는 네루. 그녀는 내가 취하려는 스탠스를 파악했다는 듯, 새빨간 안광을 토해내더니 이내 지면을 강하게 구르며 내게로 돌진해오기 시작했다.
내가 방패를 치켜들자, 내 움직임을 미리 읽어냈다는 듯이 다시금 발을 박차며 하늘을 날아 내 배후로 빠르게 이동하는 네루. 그리고 철컥-
승기를 잡았다는 듯, 내게로 겨누어진 총구가 보였다.
그 뒤에서 가소롭다는 듯이 입꼬리를 올린 네루의 표정이 내 시야에 들어왔다.
하지만.
그녀가 모르는 것이 하나 있었다.
“끝이다, 이 자식-!”
타앙!
“하아?!”
그녀의 감각보다 더 뛰어난 것이, 바로 나의 감각이라는 것.
네루는 자신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입을 쩍 벌리며 나를 바라보았다.
놀랐냐? 나도 놀랐다. 네루가 내 등뒤로 돌아오는 타이밍에 맞춰서 나는 본능적으로 측면으로 몸을 돌려서 방패로 날아오는 모든 총알들을 막아냈으니까.
그것도, 네루가 도약한 순간부터 발사한 ‘모든’ 총알의 궤적을 읽어내고 말이다.
“너, 너, 이 미친……!”
“후우. 이번엔 제가 가겠습니다, 선배님.”
“존나 웃긴 새끼네, 이거!”
나는 네루에게 말할 틈조차 내어주지 않고 달려들었다. 이번에는, 전보다 더욱 속도를 내서.
그에 네루의 눈빛에 이채가 감돌았다.
포탄처럼 쏘아진 내 신형이 순식간에 네루의 지척까지 도달했을 순간, 네루는 한없이 즐겁다는 듯이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몸을 낮추었다.
그리곤.
“건방진 후배 자식이─!!”
투콰아아앙─!!
그녀는 내 방패를 힘껏 발로 후려쳤다.
마치 망치로 후려친 듯한 충격이 방패로 전해져왔다.
강력한 반동에 잠시 물러나던 그 순간, 귓가에 절그럭- 하며 이질적인 소음이 잡히기 시작했다.
그 순간.
네루는 섬뜩한 미소를 머금으며 말했다.
“어디 한번 마음껏 해봐라, 망할 후배!”
“……!”
촤르르륵-!
네루가 발로 방패를 후려쳤을 순간, 방패 위쪽에 걸린 사슬이 움직이며 나의 가드가 한순간 내려갔다. 방패에 가해지는 압력이 더 거세지는 모습에 네루가 지금 나의 방패를 빼앗고자 하고 있음을 알았다.
순간, 방패를 놓고 권총으로만 전투에 임할까- 하는 생각이 스쳤지만 나는 곧바로 총을 쏘지않고 내 반응을 지켜보는 네루의 표정을 알아챘다.
그리고, 곧 이어 그녀의 의도를 알았다.
내가 하고있는 짓거리를 그녀가 눈치챘음을 알았다.
그녀가 말했던 ‘건방지다’의 의미를 이해했다.
“하!”
헛웃음이 나왔다. 순식간에 간파당한 네루의 안목에 감탄이 나왔다. 그렇기에 주저하지 않았다.
그리곤 감각을 ‘켰다’.
무의식적으로 사용하던 감각이 아닌, ‘진짜’ 초감각을 말이다.
그러자, 순식간에 넓어지는 나의 세계.
인간의 범주를 아득히 초월한 감각의 세계가 보였다.
감당하기 어려운 무수한 정보의 바다 속에 빠져든다.
내 이마를 향하고 있는 네루의 총구가 보인다.
여전히 내 방패를 방해하는 사슬이 보인다.
나를 바라보며 한없이 즐거운 미소를 머금는 네루의 표정이 보였다.
그리고, 이 대련장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보였다’.
느껴지고, 들렸으며, 더 나아가 알았다.
그 찰나의 순간, 내가 내린 행동은.
“좋습니다. 이번만큼은 인정하죠.”
-인정하는 것이었다.
그녀의 대단한 능력을 인정했다. 나 자신의 미숙함을 인정했다. 이대로는 승리하지 못함을 인정했다.
그렇기에 이제라도 진지해지기로 했다.
쿠구궁-!
발을 굴러, 대련실 전체에 큰 충격을 가한다.
내가 감추었던 모든 힘을 여과없이 드러낸다.
네루를, 얕잡아보지 않는다.
-내가, ‘실크’라는 사실을 숨기지 않는다.
“제가 미숙했습니다. 선배님. 그러니-”
그것이 내가 내린 선택.
미카모 네루라는 상대에게 차리는 예의(銳意).
정체를 들킬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두려움은 접어두고, 오직 싸움에만 집중하겠다는 나의 의지.
게임 속에서 드러났던 네루의 성품과 언행을 믿고.
그녀에게 나의 진심을 내보이며, 방패를 ‘강하게’ 붙잡고 뒤로 뽑아들었다.
카드드득-!
여전히 방패에 걸린 사슬이 절삭음을 내었지만, 상관없었다. 뽑히지 않는다면, 끊어내면 될 뿐이니.
터엉─!!
“진심을 다하겠습니다.”
사슬이 끊어졌다. 네루는 밀려나고, 나는 자세를 다잡았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를 노려보았다.
“건방진 녀석. 감히 선배를 속이려들어?”
“어쩔 수 없잖습니까.”
“하! 태연하게 말대꾸하긴! 그래도 뭐, 네 정체가 그런거라면 이해는 되는구만.”
“사죄의 의미로, 이제부터 진심을 다하겠습니다.”
“그건 당연히 그래야지, 후배!”
네루는 즐겁게 웃었다.
나 또한 작게 미소지었다.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에는 이전과 달리 오직 하나의 감정만이 선명하게 떠오르고 있었다.
승리를 향한 열망.
진정한 적수에 대한 호승심.
그리고, 아주 약간의 즐거움.
“가겠습니다.”
“와라!”
나는 권총을 바닥에 버렸다. 네루는 자세를 낮추었다.
서로를 또렷히 노려보며 들끓는 호승심을 연료로 삼아 일직선으로 서로에게 달려들었다.
3.
그 이후, 대련장에서 펼쳐진 풍경은 농담으로도 인간이 펼쳐낼 수 있는 풍경이 아니었다.
이전보다 한차례, 아니 두어차례는 더 높아진 듯한 신체능력으로 두 사람은 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리고 이어진 것은 끊이지 않는 폭음.
마치 세상이 종말한 것과 같은 대련장의 풍경.
주변에 있는 모든 것을 뜯어내는 풍압이었다.
총을 쏘고, 방패로 막고, 달려들며 주먹을 뻗으면 반응하여 몸을 비틀어 반격한다.
주먹으로 총을 쳐내고, 총으로 방패를 쳐낸다.
그 과정에서 두 사람에게 더 이상 ‘지상’이라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았다. 발에 닿는 모든 장소가 그들의 지면이라는 듯 벽면과 천장을 넘나들며 서로에게 공격을 가했다.
콰아아아아앙──!!!
파편이 비산하고, 먼지가 가득 피어오른다.
그 속에서 두 여인은 광소를 흘리며 진심으로 가득한 난투와 총격을 끊이지 않고 이어갔다.
쏘고, 막고, 때리고, 반격하고, 다시금 쏜다.
붉은빛과 푸른빛의 안광이 먼지 속에서 번뜩이며 선처럼 이어져 부딪히고 떨어지기를 반복한다.
이 광경을 지켜보는 이가 있었다면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으리라.
이제 막 입학한 1학년 학생이, 밀레니엄의 최강이라 불리우는 미카모 네루와 대등한 싸움을 펼치고 있는 것이었으니.
하지만, 네루는 현명하게 아무도 찾아오지 않을 외진 곳의 대련장을 선택했기에 이 광경은 그 누구의 눈에도 담기지 않았다.
그저, 전투에 임하는 두 사람만이 서로의 강함과 실력을 인정하며 더욱이 호승심을 불태웠다.
“크큭, 하하하하─! 진짜 미쳤구만, 이 자식! 이런 실력을 숨기고 있었냐?! 꽤 센스 좋은데!!”
“씨발! 존나게 세네, 진짜!”
“아앙?! 말버릇 한번 나쁘구만! 썩을 후배가-!”
오랜만에 만난 강적에 흥미를 느끼는 네루.
그리고 남들의 시선을 신경써야만 했기에 전력을 쏟아낼 기회가 없었던 나나시.
두 사람은 각자 다른 말을 내뱉고 있었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같은 마음을 품고 있었다.
즐겁다. 그리고 이기고 싶다.
상대를 향한 ‘조절’이 필요없다는 점에서 두 사람은 더없는 해방감과 호승심을 느끼고 있었다.
한 사람은 탈인간급의 전투본능으로, 한 사람은 인간을 초월한 초감각으로. 각기 다른 영역을 초월한 두 사람이었으나 두 사람의 격차는 사실상 근소한 차이였다. 각자 자신의 강점으로 약점을 채웠으니.
물론, 그것도 시간이 길어질수록 격차가 점점 벌어지기 시작했다. 네루의 승리라는 방향으로.
콰아아앙-!!
네루의 발차기에 얻어맞은 나나시가 벽에 부딪히며 튕겨져나갔다. 그에 정신을 잃지않고 달려든 나나시였지만 이미 바닥난 체력에 몸이 따라오지 않았고.
그 결과.
빠악─!
나나시의 얼굴로 네루의 니킥이 작렬한다.
그에 피를 쏟아내며 뒤로 넘어가는 나나시의 머리.
누군가는 근접전 한정 키보토스 최강인 네루를 상대로 초근접 상태에서 거의 대등한 접전을 펼치는 나나시를 두고 대단하다고 평가할 것이다.
또 누군가는, 이런 상황에서도 지치지않고 네루에게 달려드는 나나시의 정신력을 보고 대단하다며 감탄을 표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 자리에 있는 두 사람의 생각은 달랐다.
“존나, 잘싸우네, 미친…….”
“아직은 경험이 부족하구만? 후배.”
누구의 승리이고, 누구의 패배인지 서로가 제일 잘 알고 있었다.
포텐셜 자체는 나나시가 월등히 높다고 한다면, 현 시점에서는 신체 능력과 전투 경험이 압도적인 네루의 우위였다.
애시당초 한달을 수련한 정도로는 밀레니엄 최강인 네루를 따라잡을 수는 없었던 것이다.
거기다, 나나시가 착용한 방패와 양산형 권총이라는 부진한 장비들 또한 그녀가 현재 밀려나는 원인에 기인할 것이다. 아직까지 초감각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다는 근본적인 이유까지 더해지니 그녀가 아무리 진심을 낸다고 네루의 상대는 되지 못했다.
허나, 지금 이 자리에서 변명따윈 중요하지 않은 법.
나나시는 무거운 몸을 어떻게든 일으켜 세웠다.
그런 후배의 모습에 네루는 거친 숨을 내뱉으며 섬뜩한 미소와 함께 물어왔다.
“더 할 생각이냐?”
“……예. 당연히, 할겁니다.”
나나시는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애초에 그러기위해 싸움을 시작한 것이었으니.
나나시의 목적은 ‘배우는’ 것이다.
네루를 상대로 이겨내는 것 또한 목적이라면 목적이겠지만, 가장 최우선적인 목표는 배움, 그리고 성장.
네루라는 강자를 상대로 모든 경험을 빼앗아오는 것.
그로 인해 나 자신을 성장시키는 것.
그렇기에,
“하루 종일이라도, 할 겁니다.”
“크핫! 그래, 너라면 그럴거 같았다. 어디 한번 끝까지 달려가보자고─!”
전이라면 기겁하며 물러섰을 나나시였지만,
이미 네루와의 격전을 통해 더 나아진 싸움실력을 확인한 이상 그녀가 물러난다는 선택지는 없었다.
“다시, 가겠습니다.”
“그래. 언제든지 와라, 후배!”
나나시가 자세를 잡고, 네루 또한 자세를 잡았다.
거의 다 망가진 방패를 치켜든 채, 나나시는 발을 박차고 달려들려던 그 순간-
나는, 그 행동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멈추세요.”
아주 익숙한 불청객의 목소리가, 나나시와 네루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에 신나서 서로에게 뛰어들려던 두 사람은 행동을 멈추고, 불청객의 모습을 시야에 담았다.
허리까지 길게 자라난 회색 머리칼.
네루와 마찬가지로 입고있는 메이드복 차림.
양 손에 들고있는 커다란 가방과 권총까지.
거기까지 알아본 나나시와 네루의 표정이 파랗게 질리기 시작했다.
“두 사람 모두, 여기서 뭐하고 계시는걸까요?”
무로카사 아카네. 그녀가 살벌한 미소를 입가에 내건 채로 우리를 쏘아보고 있었다.
나나시와 네루는 다시금 같은 감상을 공유했다.
‘아. 망했다.’
‘젠장.’
“부장, 그리고 후배님.”
“당신들 주변을 한번 둘러보시지요.”
그리고 이어진 추궁에, 나나시와 네루는 그 순간이 되어서야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돌아보았다.
난장판이 된 대련장.
종잇장이 되어버린 방패.
그리고 상처투성이인 우리 둘.
“…어.”
“이제 당신들이 뭘 잘못했는지 아시겠나요?”
아카네의 일침. 그제서야 나나시는 흥분으로 젖었던 머리가 차가운 이성으로 얼어붙는 것이 느껴졌다.
알았다. 알게 되었기에 두려움이 몰려왔다.
직후, 나나시와 함께 흥분 상태에 빠져있던 초감각이 느릿느릿 이성을 되찾으며 그녀에게 천천히 다가와 미래의 일을 속삭였기에.
‘이거, 또 히마리 선배한테 혼나겠는데……?’
너 좆된거 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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