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7
1.
이제는 당연한 말이지만, 나는 키보토스에서 많이 유명해졌다.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첫 데뷔는 카이저 PMC와의 전투로,
이후에는 여러 사건들과 선행을 통해서,
현재에 이르러서는 와카모와의 격전으로.
키보토스에서 전례가 없다고 표현해도 좋을 업적들을 단시간에 쌓으며 말이다. 나 자신이 생각해도 어떻게 했나 싶을 정도로 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 과정 속에서 어떻게든 ‘친절한 이웃’이라는 대외적 이미지를 지키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던가.
어찌됐건 이러한 ‘실크’의 유명세는 이제 단순히 D.U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닌, 키보토스 각지의 학원에도 통용되는 이야기기도 했다.
이 사실을 어떻게 알게 되었느냐 하면, 그것은 일전에 와카모와의 싸움을 방송으로 송출했던 건과 연관이 있었다.
어떻게 나와 와카모의 싸움을 뉴스로 송출할 수 있게 되었는가. 어떤 연유로 키보토스 전체가 나와 와카모의 싸움을 지켜보았는가.
현재 생텀타워가 정지된 이 시점에서 드론을 통해 방송을 송출한다고 해도 키보토스의 각 자치구가 방송을 직접 지켜보는 것은 불가능했다.
일반적으로는 말이다.
내가 사용한 방법은 간단했다. 크로노스 스쿨을 비롯한 공영방송 보도국이 필사적으로 복구한 유선연결망. 그것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자칭 밀레니엄 최고의 천재 병약 미소녀 해커인 히마리와 그녀가 부장으로 있는 해커 동아리 ‘베리타스’.
나는 이전부터 와카모 추적을 도와주었던 그녀들에게 이번 한번만 더 도와달라는 말을 꺼냈고, 그 결과 순식간에 크로노스는 물론이고 키보토스 전역의 유선연결망을 해킹한 그들은 내 뜻대로 방송을 송출했다.
그것이 사건의 전말이었다.
“……네? 뭐라고요?”
아니,
방금까지만 해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히마리가 더욱 충격적인 소식을 꺼내들기 전까지.
“키보토스 각지에서 전체적인 범죄율이 낮아지고 있다고 하네요. 아마 그 사람들도 나나시의 방송을 봤나 본데요?”
“…….”
“그리고, 발키리에서 공식 성명을 내놓았어요. 아무래도 생텀타워가 복구되면 본격적으로 블랙마켓에 압박을 가할 생각이라는 모양이에요.”
“발키리가, 일을……?”
“후훗, 나나시의 그 반응도 이해해요. 하지만 이번만큼은 진짜랍니다. 무려 해당 발언의 주인공이 발키리의 공안국장, ‘오가타 칸나’거든요.”
“뭣.”
아무래도, 이번 사건의 여파는 내 생각보다 더욱 거대한 모양이었다.
2.
내가 기절하듯 잠든 사이에 키보토스에는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다. 언제나 수많은 사건 사고가 발생하는 도시였지만 이번만큼은 정말 그 궤를 달리했다.
우선적으론 나와 와카모가 전투를 치룬 현장에서 적들을 구속하고 이송하던 발키리가 그 과정에서 뒷세계에 대한 적지 않은 정보를 손에 넣었다던가.
그리고, 발키리에 의해 교정국으로 이송되던 와카모가 게임에서도 그러했듯이 중간에 탈출하여 현재는 행방이 묘연하게 된 일.
점차 키보토스에 생텀타워가 곧 복구될 것이라는 소문이 퍼지고 있다는 점이나, 정의가 승리한 듯한 도시 분위기에 저항하듯 몇몇 빌런 놈들이 나댔다가 나를, 그러니까 ‘실크’를 추종하는 사람들에게 처참하게 깨지게 된 일 등등.
그리고 가장 결정적인 것이 바로─.
‘……하필 이때 FOX 소대가 일을 저지른다고?’
생텀타워에서 자그마한 소란이 발생했다는 소문.
이는 SRT학원의 FOX 소대가 저지른 일이 틀림없었다. 아마 SRT 학원의 해체 소식을 접하고 그에 반발하여 소란을 일으켰으리라. 작은 소란이라며 소문이 축소된 이유는 뭐, 총학생회가 손을 썼겠지.
그리고 나는 이 사건이 발생한 것을 전해듣자마자 시라누이 카야가 연관되어있음을 직감했다.
카야는 총학생회에서 방위실장을 맡고 있다. 생텀타워가 중지되고, 총학생회장이 사라져무정부 사태가 되어버린 현 시점에서 가장 신경을 써야할 부분은 보안이다.
그런데 그 보안이 FOX 소대에게 뚫렸다. 심지어 내가 마침 활동을 못하는 순간에 말이다.
이게 우연인가?
하필이면, 이 시점에 보안이 뚫렸다.
하필이면, 이 시점에 FOX 소대가 움직였다.
하필이면, 내가 활동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게, 우연……?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내가 치료에 전념하고 있을 타이밍을 노려 카야가 일을 진행시킨 것이다. 그 결과, 나는 눈치도 못챈 사이에 일이 모두 마무리되고 말았다.
‘그렇게나 욕심을 버리기가 어려웠던거냐, 카야.’
카야가 어떤 사람이던가.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도 가리지않는 인물이 바로 시라누이 카야라는 인물이었다.
적어도 내가 이해한 바에 따르면 그러했다.
그리고 그 목적은 아직까지도 포기하지 않은 듯 보였다.
쯧, 나는 혀를 차며 앞머리를 쓸었다.
내가 알 수 없는 영역에서 일이 제멋대로 처리되고 있다는 것은 그리 유쾌한 일이 아니었다.
‘별 수 없지. 내가 이렇게 활동을 하고 있는데도 네가 그 놈의 쿠데타를 멈출 생각이 아니라면…….’
내가 더 강해져서, 카야를 제압하면 될 일이다.
마음만으로는 당장이라도 달려가서 카야의 진상을 온 세상에 뿌려버리고 싶었지만, 마땅한 정보도, 명분도 존재하지 않는 이상엔 그저 망상에 불과한 일.
하지만 이 망상을 현실로 바꾸는 일은 간단하다.
내가 더 강해지고, 더욱 많은 정보를 손에 넣으면 되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선 나 자신을 단련하고, 다양한 히어로 장비들을 제작해야겠지. 그리고 가장 결정적으로-
‘돈을 모아야한다.’
지금처럼 편의점 알바로만 돈을 벌어선 부족할 것이다.
그것으로는 아이언맨 슈트는 커녕, 제대로 된 장비조차 제작을 맡길 수 없을 것이 분명했다.
그러니.
“…진짜 의뢰라도 해야하나.”
아무래도 지금까지 미뤄두었던 초현상특무부의 부원으로써의 활동을 시작해야할 시기가 온 것 같았다.
3.
그 시각, 밀레니엄 세미나실.
유우카는 책상에 엎드려서 노아에게 한탄했다.
“어딜가든 실크, 실크. 전부 실크 이야기 뿐이네.”
“그럴 수밖에요. 저희가 보면서도 느꼈잖아요? 그녀가 평범한 사람은 절대 아니라는 것을.”
“하아, 그건 그렇지만 말이야…….”
와카모 VS 실크의 싸움이 벌어진지 하루가 지난 시점, 이 순간에도 밀레니엄에서는 인터넷 상에서도, 현실에서도 여전히 ‘실크’에 관한 수많은 이야기들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학생회로써 필연적으로 그 정보를 취득할 수밖에 없는 유우카로썬 살짝 피곤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때때로 과열되는 학생들끼리의 중재나, 과도한 떡밥에 인터넷의 트래픽이 폭증할 때면 그것을 조절하는 것도 하나의 일이었으니까.
이런 순간마다 다소 짜증나는 후배가 자리에 없다는 사실이 분통할 따름이었지만, 유우카는 그저 한숨만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불평해도 빈 자리가 채워지는게 아니었으니.
“그래서, 노아. 너는 어떻게 생각해?”
“무슨 말인가요, 유우카?”
“실크 말이야.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 학원 학생인거 같지 않아?”
그 순간, 갑작스레 던져지는 실크에 대한 의혹.
유우카의 진중한 표정에 노아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그거 알아요, 유우카?”
“뭔데?”
“방금 유우카가 꺼낸 그런 궁금증, 유우카를 피곤하게 만드는 커뮤니티에서 주로 나오는 이야기랍니다?”
“…….”
항상 과열되는 여론을 보며 피곤하다고 말하는 유우카였지만, 그녀는 실상 그 누구보다도 실크의 일에 관심이 있는 것이 틀림없다는게 노아의 관점이다.
하지만 이런 부분을 콕 찌르면 톡하고 튀어나오는 것이 유우카의 성격이리라.
바로 지금처럼.
“그런거 아니야! 난 그냥 합리적인 궁금증에서……!”
“후후, 그렇군요.”
“진짜라니까! 제발 믿어줘, 노아!”
물론 믿고 말고요.
노아는 여유로운 미소를 흘리며 새빨게진 유우카의 얼굴을 귀엽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물론, 장난과는 별개로 유우카가 꺼낸 의혹은 노아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는 부분이긴 했다.
“……어쩌면, 그녀는 저희와 정말 가까운 곳에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응? 방금 뭐라고 했어?”
“후후, 아무것도 아니에요. 유우카.”
“으응…?”
노아는 유우카의 의문 가득한 표정을 뒤로 하며 잠시 과거의 기억 속으로 빠져들었다.
몇주 전, 세미나실에서 보았던 한 백발 머리 소녀.
그 소녀의 머리카락 길이와 실크의 머리카락.
실크의 푸른 눈동자와 그 아이의 푸른 눈동자.
더 나아가서, 두 사람의 등장 시점까지.
“후후.”
노아는 즐겁다는 듯이 미소지었다.
아무래도 자신의 학교에는 남들이 알지 못하는 큰 비밀이 한가지 더 숨어있는 모양이었다.
4.
현장은 언제나 시끄럽다.
짧지 않은 세월동안 발키리의 경비견 역할을 수행해온 경험이 말해주는 일반적인 결론이었다.
이번에 도착한 현장에도 그 결론은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사방에서 들려오는 소음이 이곳이 사건이 벌어진 현장임을 말해주고 있었으니까.
다만…….
“하, 이거 웃기는 놈이로군.”
다른 현장들과는 달리, 자신의 눈앞에 보이는 것은 이미 새하얀 거미줄에 묶여있는 범인들.
입까지 거미줄로 막힌 채, 아무런 말도 꺼내지 못하며 읍읍거리는 범죄자 놈들의 분노한 눈빛. 그 시선을 한몸으로 받아낸 발키리의 광견(狂犬)은 피식 웃음을 흘리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언제부터 발키리가 자경단의 뒤처리 전담 조직이 되어버린 것인지. 실크 녀석, 진심으로 얼굴 한번 보고싶어지는군.”
오가타 칸나.
발키리의 공안국장인 그녀는 주변 일대를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리고 사라진 한 가면 소녀를 떠올렸다.
어느 날부터 나타나 도시의 곳곳을 들쑤시고 다니는 자칭 및 타칭 영웅인 자경단, 실크.
칸나는 처음 그녀에 대해 알았을 때만 하더라도 좋은 감정만을 품고 있지 않았다. 그녀가 행하는 모든 일들은 어디까지나 사적제재, 불법이었으니까.
허나, 최근에 이르러서는 그 시선이 조금 달라졌다.
다른 이들보다 훨씬 안목이 뛰어난 칸나이기에 이번 방송을 통해 볼 수 있었던 부분.
바로, 영웅인줄 알았던 소녀의 일면.
와카모와의 싸움에서 그녀가 여실히 드러냈던 유약한 부분을 예리한 눈빛으로 캐치한 그녀였기에.
실크가 단순히 흥미 본위나 사적 감정을 통해 자경단 활동을 하는게 아님을 알았다. 그 때문일까, 이전보다는 다소 부드러운 시선으로 실크를 볼 수 있게 된 칸나였다.
그리고, 이번 무정부 사태 때 실크가 발키리를 대신하여 도시의 질서를 지켜준 것도 사실이었기에.
“나중에 붙잡게 된다면, 그대로 발키리에 가입시켜서 엄하게 굴려주도록 하지. 실크.”
그런 농담까지 내던질 수 있을 정도는 되었다.
상어이빨을 씩 내밀며 웃음을 터뜨린 칸나였지만, 그녀는 이윽고 순식간에 미소를 얼굴에서 지워내더니 다시금 살벌한 눈빛으로 범죄자들을 내려다보았다.
“체포해라. 돌아가는 즉시 심문하도록 하지.”
“네! 국장님!”
“빠르게 현장을 정리하고돌아간다. 다들 움직이도록.”
이제부터 그녀는 오가타 칸나가 아닌, 발키리의 광견(狂犬)으로 돌아갈 순간이었으니.
“부디, 이번 기회로 나쁜 놈들을 뿌리뽑을 수 있었으면 좋겠군.”
그것은, 시민을 위해 봉사하는 그녀의 진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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