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3
1.
나는 사람이 싫다.
더 나아가 사람이란 존재가 혐오스럽다.
그들은 언제나 나를 상처입히고 아프게만 하는 존재였으니까, 믿음을 배신하고 신뢰에 보답하지 않는, 동물만도 못한 존재들이었으니까.
과거, 나 또한 사람에게 기대하고, 의지하며, 그들과 함께하는 것을 즐겼던 시기가 있었다. 함께 거리를 걸으며 멍청하게 웃고, 같이 공부를 하며 같은 시간을 공유하며, 좋은 일에는 서로 기뻐하는.
그런 시기가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후회로 가득한, 시간이 아깝게만 여겨지는 그런 순간이 있었다.
그때의 나는 그들을 믿었고, 신뢰했었다.
하지만, 그런 내게 되돌아온 것은 배신이었다.
누군가는 나를 악마라 불렀고, 또 누군가는 나를 괴물이라 부르며 내게 말로 된 칼날을 휘둘렀다.
그들은 어째서 내게 그런 심한 말을 하는걸까.
처음 그 말을 듣고, 나의 귀를 의심했다. 그리고 바보같이 웃으며 친구라 여겼던 이들에게 애원했다.
나의 귀가 잘못된거라고, 자신이 잘못말한 거라고.
그렇게 말을 해주길 바랬다.
그러나-
“괴물 같은 년!”
“나는 처음부터 너의 친구였던 적이 없어.”
“믿었다고? 하! 멋대로 믿은 네 잘못 아니야?”
결국,
돌아온 것은 비참하고, 고통스러운 배신 뿐이었다.
친구라고, 동료라고 믿었던 이들. 한때나마 내가 진심으로 사랑하고 아꼈던 사람들.
나와 같은 시간을 공유한 만큼, 같은 생각과 감정을 품었다고 여겼던 이들이 오히려 앞으로 나서서 나에게 돌을 던졌다. 충고와 설득으로 가장된 악의를 퍼부었다. 아프고, 또 아픈 말을 뱉었다.
심장이 아리고, 머리가 터질 것처럼 아파왔다.
순간, 눈에서 흐르는 것이 눈물인지 피인지조차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저들의 악의는 내 심장을 조였다.
알 수 없었다.
내가 한 잘못은 무엇이고, 어째서 아파야만 하는지.
그 무엇 하나도 이해할 수 없었다.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이해하는 순간 모든게 망가질까봐, 더 이상 모든걸 되돌릴 수 없게 될까봐.
‘왜?’
그럼에도, 간절히 던진 의문이었다.
나를 지옥에서 꺼내주길 바라는 마음에 뻗은 손길이었다. 그저 모든게 장난이라고 그렇게 말하며 나를 버리지 말아달라는 애원이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역시나 날카로운 악의 뿐.
믿었던 이들이 나를 배신했다는 차가운 현실 뿐.
그 순간에 그들이 내게 무슨 말을 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그때 느꼈던 상실감과 배신감은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발 아래의 세상이 무너지고, 정신이 새하얗게 질리는 나의 모든 것들이 부정당하는 듯한 느낌. 끔찍하고도, 한없이 두려운 감각.
눈물마저 흘릴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러운, 다시는 느끼고 싶지 않은 절망감이다.
그렇게, 이 날의 기억은 그렇게 내 마음 속 깊은 곳에 뿌리박혔다. 나는 이 날 이후로 마음 속 어딘가가 망가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무엇이 망가졌는지, 왜 고쳐야 하는지는 모른다.
그저, 더 이상 상처받고 싶지 않다는 본능만이 나를 자리에서 일어나게 만들 뿐이었다.
가면을 썼다.
총을 들었다.
그리고 웃었다.
나를 배신한 이들은 나를 보며 괴물이라고 했다.
이런 내가 괴물이라면, 반대로 그들 자신은 ‘사람’이라는 말일까?
그렇다면 한다면, ‘사람’이라는 것이 이토록 끔찍하고 지독한 존재라고 한다면.
누군가를 상처입히고, 배신하는 것이 ‘사람’이라면-
“후후후, 아하하하하─!!”
사람은 나의 적이다.
나는, 그것을 전부 부숴버리기로 했다.
그것이 바로-
내가 ‘재액(災厄)의 여우’가 된 이유였다.
2.
교정국에서 탈옥했던 순간을 기억한다.
D.U의 생텀타워가 정지해 도시 전체가 혼란의 빠진 모습과, 그 안에서 아우성 치는 사람들의 고성을.
그리고 그 과정에서 생기는 수많은 배신을 보았다.
우스운 일이었다.
누군가의 제어가 사라진 것만으로 서로를 배신하고, 태연하게 악행을 저지르며, 욕망과 본능 그대로 행동하는 저 저열한 모습을 보아라.
와카모가 처음 인간을 불신하게 된 것은 누군가의 배신이지만, 이후로 인간에게 질리도록 만든 것은 저러한 아둔하기 짝이 없는 인간들 때문이었다.
도시의 규율과 질서는 웃음거리가 되어 길바닥에 쳐박혔고, 공권력은 기능을 상실했다.
그야말로 야만의 시대로 되돌아간 키보토스의 밑낯이 훤히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아하하하! 정말, 시시한 일이네요….”
교정국에서 탈출한 이후, 와카모는 그러한 인간의 본성을 더욱 부추기는 일을 시작했다.
도시 곳곳을 테러하거나, 어떨 때에는 다른 사람을 부려서 도시의 혼란을 가중시켰다. 재액(災厄) 앞에서 힘없이 무너지는 인간을 지켜보았다.
“음?”
그러다가, 그녀를 보았다.
영웅, 실크.
뉴스 화면 너머로 마주한 것은 언제부턴가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던 질서.
사람들의 환호와 찬사, 그리고 희망이 그곳에 있었다.
처음엔 남들과 비슷한 의문이었다.
저 존재는 누구며, 어째서 저런 행동을 하는가.
왜 그녀는 영웅 행세를 하며 키보토스를 활보하는가.
사람들의 질문에도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행동으로 증명하겠다는 듯이 하루라도 빠짐없이 키보토스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혼란을 정리했다.
범죄를 벌하고, 질서를 바로세운다.
악당을 처단하고, 시민을 구출한다.
그녀가 세운 기본적인 질서는 그것이었다.
악은 악으로 남고, 선은 선으로 남는 기본 윤리.
단순하면서 바보같은 구분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키보토스는 영웅의 행보를 따라 아주 천천히 그 분위기가 변하고 있었다.
악당은 영웅의 눈치를 보았고, 시민은 영웅을 신뢰하며 거리를 돌아다녔다.
어느덧 질서의 상징이 되어버린 실크의 존재감은 키보토스 전역에 퍼질 정도로 거대해졌다.
이제 시민들은 악당이 저지르는 혼란을 보고 도망가지 않았다. 언젠가 영웅이 도와줄 것이라 믿으며 자신들이 나서서 총구를 치켜들었다.
시민이 악에 저항하고, 영웅이 악을 벌한다.
처음 보는, 도저히 익숙하지 않은 광경이었다.
자신이 살면서 본 적 없는 광경. 과거부터 현재까지 사람의 악의에 노출되었던 여우 소녀는 보지 못했던-
“…….”
놀라운 광경이었다.
단 한명의 존재로 키보토스의 혼란이 사그라든다.
수많은 악의가 영웅을 덮치더라도, 그녀는 지지않고 다시 일어나 언제나 그렇듯 악을 처벌했다.
그런 광경에 와카모는 깊은 흥미와 거부감을 느끼고 있었다. 혼란을 바로잡는 광경에 거부감을 느낀 것이 아니다. 화면에서 나오는 저 소녀, 실크를 보니 알 수 없는 분노가 차올랐다.
왜?
그녀가 지금껏 와카모가 마주하지 못한 인간이라서?
아니면, 아직까지 와카모의 마음 속 어딘가에 있는 실낯같은 희망을 증명하고 싶어서?
모르겠다. 해석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언제나 마찬가지로 충동을 따라 행동할 뿐이었다.
그저, 이번에는 그 대상이 저 영웅이었을 뿐이다.
그렇게 와카모는 자신의 감정을 규정했다.
“자아, 당신의 본성을 드러내보세요.”
언제나 그렇듯, 이유를 덧붙일 뿐이었다.
실크의 진짜 목적을 밝혀내겠다.
그녀가 고결한 영웅 따위가 아님을 알아내겠다.
오직 선의와 책임으로만 움직이는 것이 아님을.
그녀가 영웅이 아닌, 단순한 ‘인간’임을 증명하겠다.
변명으로만 덧붙인 이유를 머릿속으로 되뇌였다.
자신이 그녀를 통해 질문에 대한 답을 얻고싶은 것임을 외면하며 그녀는 실크를 도발했다.
그녀가 자신을 쫓도록, 자신에게 다가오도록.
“오셨군요. 도시의 영웅, 실크.”
“……와카모.”
그렇게, 현재에 이르렀다.
3.
실크는 강하다.
이는 와카모가 본능적으로 알아챈 사실이다.
그렇기에 영웅을 굴복시키기 위해선 가능한 수단과 방법을 가려서는 안되었다.
이후, 자신을 치졸하다고 욕하거나 비난할지언정 그녀는 가능한 모든 방법을 통해 영웅을 굴복시키겠노라 결심했다.
자신의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흔들림을 애써 무시한 채로, 와카모는 언제나 그렇듯 자신의 장기를 살려 영웅에 대항할 방법을 찾아냈다.
방법은 금세 찾을 수 있었다.
유명인이 적이 많듯, 영웅인 그녀도 마찬가지로 수없이 많은 적들이 존재했다.
키보토스의 뒷면에서 살아가는 이들 대부분은 빛 아래서 활동하며 자신들을 대적하는 감시자를 불편하게 여기고 있었다.
와카모는 그 부분을 찔러 그들을 유혹했다.
영웅에 대한 반감을 자극하며 그녀에게 복수할 기회를 속삭였다.
그들 대부분은 손쉽게 와카모에게 홀려 영웅에게 복수하기 위해 그녀의 아지트로 모여들었다.
그렇게 수많은 악당이 이 자리에 모였다.
자신을 포함해서 말이다.
이후, 와카모는 언젠가부터 자신을 추적하던 실크에게로 자신의 위치를 대놓고 드러냈다.
와카모 자신이 지금까지 파악한 그녀라면 분명 이곳에 모습을 드러낼 것이라 생각했기에.
그리고 역시나.
악당들의 소굴에 영웅은 홀로 나타났다.
그 당당한 모습에 다시금 가슴이 저리듯 아파왔지만 그녀는 애써 무시하며 총을 강하게 거머쥐었다.
‘자, 증명해보세요.’
당신이, 정말로 이 도시의 영웅인지.
아니면 단순한 한 명의 인간에 불과했는지를!
그것은, 소녀가 던진 질문이었다.
4.
“이게, 네가 준비한 함정이었냐?”
나는 헛웃음을 흘리며 주변을 돌아보았다.
어쩐지 감각에 잡히던 인기척이 이상할 정도로 많다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와카모는 나에게 적대심을 가진 뒷골목의 사람들을 거의 쓸어모은 모양이었다.
나 하나를 쓰러뜨리기 위해서.
‘이게 어떻게 학원 청춘물이냐.’
슈퍼히어로를 한방울 첨가한 느와르물이지.
어이가 없었다. 나 하나를 잡기 위해 우루루 몰려든 저것들이나-
“……진짜 어이가 없네.”
할만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나 자신이나.
철컥-
나를 겨누는 총구. 사방에서 들려오는 장전 소리. 살기를 가득 담아 쏟아지는 시선들.
어림잡아 세어도 수십이 넘어가는 듯한 숫자들이다.
가능할까?
“해야지.”
나는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주먹을 꽉 쥐었다.
이는 단순히 적들을 벌하기 위함이 아닌, 나 자신의 증명을 위해서도 있었다.
멀지 않은 미래에는 이보다 더 힘겹고 강한 적과도 싸우게 될 것이다. 그때를 대비해 지금 내게 주어진 힘들을 온전히 나만의 것으로 삼아야했다.
‘그리고 이 자리는 이제부터 오직 나와 저들만의 싸움이 아니게 되었으니까.’
위잉-
등 뒤에서 들려오는 아주 희미한 소음.
모습은 안보여도 카메라 렌즈가 조작되는 소리와 드론의 비행 소리가 아주 흐릿하게 귓가에 잡혔다.
저 드론을 통해 키보토스의 시민, 학생, 그리고 빌런들은 나의 싸움을 지켜보게 될 것이다.
이런 행동을 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간단했다.
여기서 내가 적들을 모두 쓰러뜨린다면,
그야말로 정의가 승리했다는 의미가 되지 않겠는가.
더 나아가 혼란스러운 시기에 살아가는 시민들은 이제 정말로 희망을 품고 살아갈 것이고, 수많은 학생들이 나를 인식하고, 기억하겠지.
언젠가 나는 키보토스 전역을 돌아다니며 활동하게 될 것이다. 그때를 대비해 미리 인지도를 쌓아놓기 위한 준비이자, 일종의 선언이기도 했다.
“와라.”
나는 여기에 있다.
너희가 도시에서 개지랄을 떨고자 한다면.
나는 언제든 너희 빌런들의 대가리를 깨버릴 준비가 되어있으니.
그것이,
내가 키보토스에 알리는 메시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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